Statement 02

 불교의 가르침에는 깨달음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온전히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사랑해야만 한 찰나 성불을 이룬다는 말이다. 부처가 성불하는 과정에는 마구니 (직,간접적 방해요소) 의 방해가 있었을 터. 마구니의 방해에 굴하지 않고 성찰을 이룬 부처는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나르시스트라고 볼 수 있다.

 

 나르시시즘은 일종의 자기애의 표출이라고 상징되는 긍정적 나르시시즘과 그 발단 자체가 진짜 자신으로부터 도피하여 자신의 이미지/페르소나를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혐오로부터 발단을 보는 부정적 나르시시즘으로 분류할 수 있다. 나는 부정적 나르시시즘의 측면에 집중하여 자기혐오가 현 세대의 마구니의 방해라고 파악하였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외모는 일종의 경쟁력이 되었고, 이러한 경쟁력을 가지지 못한 자는 도태된다. 그리고 그 과정속에서 우리들은

자/타 불문, 무수히 많은 외적 비교를 겪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러한 상황의 반복은 나르키소스가 그러했듯 본인 자신이 아닌 타인의 기준을 동경하게 되고, 본연의 나 자신의 기준이 '미달'로 강등되는 일종의 자기혐오를 겪게 된다. 나는 이러한 자기혐오를 겪었으며, 개인으로서 경험한 내부에서 이를 바라보는 측면과 작가로서 사회맥락의 측면에서 이를 바라보는 두 가지 접근으로 탐구를 시작하였다.

 

 그 탐구의 과정 속에서 동시대의 나르시스트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나르시시즘을 표현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고, 불특정 다수에게 셀피를 통해 자기애를 표출하는 SNS를 나르시시즘의 장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외모에 대한 미적기준이 극대화된 게이커뮤니티 SNS 속에서 끊임없이 셀피를 통해 자기애의 표출과 동시에 일종의 세일즈를 하는 모습을 포착하였고, 위에 언급한 두 가지 접근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게이, 좀 더 확장하여 퀴어라는 존재는 동시대에 부정당하고 있음과 동시에 늘 지워지지 않는 핫한 이슈다. 온라인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불특정다수에게 노출되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감수하고 게이커뮤니티 SNS, 더 과감하게 일반 SNS상의 이미지 공간안에서 그들은 '좋아요'와 '댓글' 을 통해 자신의 매력을 어필하며 타인에 의해 입증받는다. 이는 서론에서 언급한 부처의 '성찰'과 같은 맥락을 갖고 있으며, 이에 대한 결과를 화랑도 시리즈를 통해 표현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확립된 '자아정체성' 대한 작업은 심호도 연작으로  확장된다.

 

 불교미술을 전공하였고, 동양의 기법을 사용하지만 차용하고 있는 소재는 서양의 신화이다. 이처럼 상반되는 요소들을 통해 본인이 탐구하는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는 주류와 비주류, 사회와 개인 등으로 구체화 될 수 있다. 화랑도 시리즈 역시 다양한 상반된 요소들로 읽힐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

There is a saying in Buddhist teachings that anyone can become a Buddha through enlightenment. In other words, I have to focus on myself and love myself. The Buddha must have encountered many obstacles in the process of success. The Buddha, who concentrated on what he said without being disturbed, is a great narcissist.

Narcissism can be classified as positive narcissism, symbolized as a sort of expression of self-love, and a negative narcissism that sees origin from self-loathing because its origins themselves love their own image/character by escaping from the true self. I focused on the side of negative narcissism and determined that self-loathing was a hindrance to this generation.

In an infinite competitive society, appearance has become a kind of competitiveness, and those who do not have this competitiveness are put on the back burner. And in the process we face a myriad of external comparisons, a kind of self-loathing, which, as Narcissus did, leads to the repetition of this situation, yearning for others and my original standard is downgraded to "under-par." I experienced this kind of self-loathing, and began to explore two approaches: looking at it from within as an individual and from the perspective of social context as an artist.

In the course of the quest, the contemporary narcissists came to focus on how to express their narcissism and viewed SNS, which expresses its love through selfie to unspecified people, as a place of narcissism. And in the gay community SNS, where aesthetic standards for appearance have been maximized, we have constantly captured the expression of self-love through selfie and at the same time a kind of sale, and began to explore with the two approaches mentioned above.

The existence of Queer is a hot issue that is denied and not erased at the same time. Despite the fact that online space can be an object of attack due to exposure to unspecified individuals, the image space of the gay community SNS prove more boldly attractive through "likes" and "comments". It has the same context as the Buddha's 'success' mentioned in the introduction, and the results were expressed through the Hwarangdo series. Based on this, work on "self-identity" that is established is extended to series of Shim Ho-do.

I paint in Korean traditional Buddhist techniques, but context is inspired by Western mythology. Through these conflicting elements, I explore the friction, which can project into mainstream and non-mainstreamers, society and individuals. The Hwarangdo series can also be read with a variety of conflicting elements, and it is intended to ask the question of where the essence reside.

Statement 01

나는 나의 유년 시절에는 “예쁘다”는 말을 종종 들었던 기억이 난다.

청소년기에 접어 들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예쁘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

성장과정에서 나의 인상은 험악해지고 무서워졌다.

 

이성에게 나의 존재는 첫만남부터 보기 싫은 존재가 된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 첫만남에 “못생겼다” 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런 상황은 계속 반복되었다.

 

나는 점차 내 외모에 자신감을 잃어갔고, 부정적  나르시즘 인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다.

더 이상 나는 사랑에 대한 감정으로 사람을 만날 수 없었다.

보나마나 싫어 할거야 라는 생각이 나를 지배했다.

점점 나는 내 자신이 외적으로 아름다워 질 수 없다고 단정짓게 되었다.

이후 나는 외적인 아름다움에 갈망하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하는 SNS를 나도 접하게 되었다.

그 속엔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기 얼굴에 자신이 있는 표정과 포즈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냈다.

 

 나는 그들의 자기애가 부러웠다.

그들은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었고 나는 내 그림으로 내가 가지지 못한 그들의 아름다움을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재료인 곱디 고운 비단에 그들의 아름다움을 표현하였다.

비단이라는 민감하고 부드러운 재료는 그들의 아름다움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비단에 수십 번 칠하여 발색을 내는 것도 아름다움을 얻기 위한 노력은 그만큼 힘들다는 것과 일맥상통하여 재료로 선택하였다.

 나는 왕의 어진을 그리는 초상기법을 사용한다.

비단에 섬세하게 표현하는 기법은 내가 다루고 있는 남성의 아름다움을 담기에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부드러운 곡선과 연하게 채색을 쌓아 올리는 기법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남성들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있다. 

                                                     < 화랑도 전시 서문 中>